쇼츠 보는 시간이 늘어난 아이, 긴 글 읽기는 왜 힘들어질까
쇼츠와 짧은 영상에 익숙해진 아이가 긴 글 앞에서 자꾸 멈춘다면, 그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주의 습관의 문제일 수 있다. 화면 위 주의 지속 시간이 실제로 짧아지고 있다는 Gloria Mark의 실측 연구와 한국 어린이 미디어 이용 조사를 바탕으로, 짧은 보상에 길들여진 주의가 긴 호흡의 읽기와 왜 충돌하는지 설명한다. 금지 대신 매일 10분의 긴 글 읽기를 제안하고, 2, 3주 뒤 무엇이 달라지면 되고 있는 것인지 판단 기준까지 정리한다.
학원 차량을 기다리는 5분
하교 시간, 학원 차량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손에는 대부분 폰이 들려 있다. 기다림은 5분이지만 그 사이 쇼츠 몇 편이 지나간다. 집에 돌아오면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태블릿이 켜지고, 주말에 조부모 댁에 가면 어른들의 폰이 자연스럽게 아이 손으로 넘어간다. 그러다 밤에 책을 펼치면 아이는 몇 줄 만에 몸을 비틀고, 물을 마시러 가고, 화장실에 다녀온다.
이것이 어느 한 집의 풍경이 아니라는 점은 조사로도 확인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만 3세에서 9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실시한 어린이 미디어 이용 조사에서, 우리나라 어린이의 하루 미디어 이용 시간은 세계보건기구가 권고하는 수준을 크게 웃돌았고 그 중심에는 유튜브 같은 온라인 동영상이 있었다. 짧은 영상은 이미 아이들 하루의 기본값에 가깝다.
이런 아이가 긴 글 앞에서 자꾸 멈추면 부모는 인내심을 탓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의지의 문제라기보다 주의 습관의 문제에 가깝다. 짧고 빠른 보상에 맞춰진 주의는 느리게 쌓이는 긴 글의 재미와 충돌한다. 다행인 것은 이 주의가 길들여진 것인 만큼, 다시 길러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짧은 영상은 주의를 어떻게 길들이나
쇼츠와 짧은 영상은 몇 초 안에 자극과 보상을 준다. 화면이 빠르게 바뀌고, 다음 영상은 손가락 한 번으로 이어진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주의는 빠른 보상을 기대하는 쪽으로 익숙해진다.
이 변화는 짐작이 아니라 측정의 대상이다. 캘리포니아대 어바인의 심리학자 Gloria Mark는 20년 넘게 사람들이 화면 앞에서 주의를 어떻게 옮기는지 초 단위로 기록해 왔다. 2004년 무렵 사람들은 한 화면에 평균 2분 30초쯤 머물렀지만, 최근 측정에서는 그 시간이 평균 47초 수준까지 짧아졌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화면 전환의 상당 부분이 알림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일으킨 자기 중단(self-interruption)이었다는 점이다. 성인 직장인을 관찰한 결과이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빠른 전환이 반복되면 전환 자체가 습관이 되어, 자극이 없어도 주의가 먼저 다음 자극을 찾아 나선다.
문제는 긴 글의 보상 방식이 정반대라는 데 있다. 책은 몇 페이지를 참고 들어가야 이야기의 재미가 열린다. 빠른 보상에 길든 아이에게는 이 초반의 느림이 유독 지루하게 느껴진다. 인내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다림 끝의 보상을 경험할 틈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깊은 읽기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읽기 연구자 Maryanne Wolf는 인간의 뇌가 읽기를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말하기와 달리 읽기는 유전으로 주어진 능력이 아니라, 여러 뇌 영역을 연결해 새로 만들어 내는 회로다. 특히 글의 의미를 곱씹고, 앞뒤를 연결하고, 자기 생각과 견주며 읽는 깊은 읽기(deep reading)는 오랜 연습으로 자란다.
자라는 회로는 줄어들 수도 있다
만들어지는 능력이라는 말에는 양면이 있다. 연습하면 자라지만, 쓰지 않으면 약해진다. 훑어보기에만 익숙해진 아이는 천천히 깊게 읽는 근육을 덜 쓰게 된다. 이것이 긴 글 앞에서 힘들어하는 진짜 이유에 가깝다. 능력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덜 쓰여 무뎌진 것이다. 그리고 무뎌진 것은 다시 세울 수 있다.
금지가 답이 아닌 이유
그렇다면 짧은 영상을 모두 끊으면 될까. 심리학은 오래전부터 반대 방향을 가리켜 왔다. Jack Brehm이 1966년 정리한 심리적 반발(psychological reactance)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의 자유가 막혔다고 느낄 때 그 자유를 되찾으려는 동기가 오히려 강해지고, 금지된 것은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폰을 빼앗긴 아이가 하루 종일 폰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다. 전면 금지는 반발과 숨어서 보기를 부르기 쉽고, 부모의 감시가 느슨해지는 순간 무너진다.
더 나은 방향은 짧은 자극을 없애는 싸움이 아니라, 긴 호흡의 읽기를 아이의 하루에 다시 심는 것이다.
- 매일 정해진 시간에 짧게라도 긴 글을 읽는 자리를 만든다. 처음에는 10분이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길이가 아니라 매일이다.
- 초반의 느림을 넘어설 만큼 재미있는 책을 고른다. 아이가 이미 좋아하는 주제, 이미 아는 이야기의 원작이면 진입이 쉽다.
- 다 읽은 뒤 짧게 이야기를 나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인물이 좋았는지 묻는 대화가 읽기를 기다릴 이유로 바꾼다.
- 부모도 함께 긴 글을 읽는 모습을 보인다. 아이의 주의 습관은 주변의 습관을 닮는다.
2, 3주 뒤에 볼 신호
실천보다 어려운 것이 점검이다. 하루 이틀의 반응으로 판단하면 매일 흔들린다. 주의 습관은 천천히 바뀌므로 2, 3주를 한 구간으로 잡고, 그 뒤에 다음 신호를 본다.
되고 있다는 신호는 이런 것들이다. 10분을 채우는 날이 지난주보다 늘어난다. 매일 성공할 필요는 없고, 채우는 날이 늘고 있으면 방향은 맞다. 아이가 읽던 책의 다음 내용을 먼저 궁금해한다. 그래서 걔는 어떻게 됐느냐는 말이 나오면 느린 보상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읽는 도중 자리를 뜨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준다.
2, 3주가 지나도 10분이 계속 버겁다면, 시간을 늘리기 전에 책을 의심한다. 난이도가 높거나 주제가 아이의 관심 밖일 가능성이 크다. 더 쉬운 책, 아이가 이미 아는 이야기, 좋아하는 주제로 바꾸되 10분이라는 약속은 그대로 둔다. 읽기 시간이 매일 실랑이가 된다면 시간대를 바꾼다. 짧은 영상을 본 직후보다는 저녁 식사 뒤나 잠들기 전처럼 자극이 가라앉은 시간이 자리 잡기 쉽다.
한 가지는 신호에서 빼도 된다. 아이가 여전히 쇼츠를 좋아하는 것은 실패가 아니다. 목표는 짧은 영상을 미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긴 호흡도 견디는 주의를 함께 갖게 하는 것이다.
지금 시작해도 되는 이유
주의가 짧아졌다는 것은 아이에게 결함이 생겼다는 뜻이 아니다. Mark의 기록이 보여주듯 같은 환경에 놓인 어른의 주의도 같은 방향으로 짧아졌다. 짧아지게 만든 것은 아이의 하루를 채우고 있는 화면들이고, 아이의 하루가 어떻게 짜이는지는 부모가 바꿔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다. 긴 글의 느린 재미를 매일 조금씩 다시 경험하면, 아이의 주의는 다시 긴 호흡을 견디는 쪽으로 자란다. Wolf의 말대로 읽는 뇌는 만들어지는 뇌다. 만들어지는 것은 다시 만들 수 있고, 오늘 저녁 10분이면 시작으로 충분하다.
참고한 자료
- Wolf, M. (2018). Reader, Come Home: The Reading Brain in a Digital World.
- Wolf, M. (2007). Proust and the Squid: The Story and Science of the Reading Brain.
- Mark, G. (2023). Attention Span: A Groundbreaking Way to Restore Balance, Happiness and Productivity.
- Brehm, J. W. (1966). A Theory of Psychological Reactance.
- 한국언론진흥재단 (2020). 2020 어린이 미디어 이용 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