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의 교육 | 9분 읽기

서술형과 수행평가가 늘어나는데 중등 영어 글쓰기는 어떻게 준비하나

에픽어학원 , 읽기의 과학, 원서 중심, 데이터 기반 영어 교육

서술형과 수행평가가 늘어나는 배경에는 아이 자신의 글을 확인하려는 평가로의 이동이 있다. AI가 초안을 대신 써 주는 시대에 평가는 오히려 아이가 직접 쓴 글을 요구하는 쪽으로 움직인다. 이 글은 서술형에서 통하는 글쓰기의 힘이 문법 규칙 암기가 아니라 읽은 것을 자기 논리로 구조화하는 데서 나온다는 점을 제2 언어 습득 연구와 읽기와 쓰기의 관계를 다룬 메타분석으로 설명하고, 글쓰기 프로그램을 판별하는 질문 세 가지와 가정에서 시작할 수 있는 최소 루틴을 제시한다.


읽기는 되는데 쓰기에서 막히는 아이

초등 고학년 자녀를 둔 집에서 자주 나오는 걱정이 있다. “중등 가면 서술형이 많아진다는데, 우리 아이는 영어책은 곧잘 읽어도 자기 생각을 영어로 써내라고 하면 막혀요.” 예전에는 단어를 외우고 문법 문제를 맞히면 점수가 나왔다. 그런데 요즘 학교 시험과 수행평가는 아이에게 직접 문장을, 문단을, 답안을 쓰라고 한다. 준비의 방향이 달라진 것이다.

이 변화는 우연이 아니다. 평가가 서술형과 과정 중심으로 움직이는 데는 제도의 흐름과 시대의 흐름이 함께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끝에서 부모가 마주하는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규칙을 더 많이 외우게 할 것인가, 아니면 아이가 스스로 글을 쓰는 힘을 키울 것인가.

평가가 서술형으로 움직이는 두 가지 이유

첫 번째는 제도다. 서울특별시교육청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서술형 및 논술형 평가를 확대하는 기조를 여러 해에 걸쳐 밝혀 왔고, 영어를 포함한 여러 교과에서 평가 모델을 개발해 학교에 보급하고 있다. 정답을 고르는 문제만으로 성적을 매기던 방식에서, 아이가 자기 문장으로 답을 구성하는 비중을 제도가 직접 늘리는 방향이다. 지금 초5, 초6 아이들이 중등에 올라가면 서술형과 수행평가는 예외가 아니라 기본이 된다.

두 번째는 시대다.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이 몇 초 만에 그럴듯한 영어 문단을 만들어 주면서, 교육 현장은 새로운 고민을 안게 되었다. 집에서 써 오는 과제는 누가 썼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평가는 자연스럽게 결과물 하나가 아니라 과정을 보는 쪽으로, 그리고 교실 안에서 아이가 직접 쓰고 고치는 쪽으로 이동한다. 수행평가가 늘어나는 배경에는 이 흐름이 있다.

역설: AI 시대의 답이 결국 자기 글이다

여기에 흥미로운 역설이 있다. AI가 글을 대신 써 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평가는 오히려 아이 자신의 글을 더 강하게 요구한다. 도구가 발달할수록 “이 아이가 정말 자기 힘으로 읽고 생각하고 쓸 수 있는가”를 확인하려는 압력이 커진다.

그러니 준비의 방향은 분명하다. AI가 대신 써 줄 수 없는 힘, 곧 아이가 텍스트를 스스로 읽고, 자기 논리로 정리하고, 문장으로 조립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이 힘은 문제집을 빨리 푸는 훈련으로는 자라지 않는다.

서술형이 진짜로 보는 것

서술형 평가와 수행평가가 무엇을 측정하는지 구체적으로 보면 준비의 방향이 더 선명해진다. 학교의 서술형 문항은 대개 이런 것을 요구한다. 지문을 읽고 핵심을 자기 말로 요약하기. 조건에 맞춰 문장을 영작하기. 주어진 주제에 대해 자기 생각을 근거와 함께 쓰기. 읽은 글의 내용을 바탕으로 답안을 구성하기.

이 문항들의 공통점이 있다. 어느 것도 단어 스펠링이나 문법 규칙 자체를 묻지 않는다. 모두 아이가 무언가를 읽거나 이해한 뒤, 그것을 자기 문장으로 다시 만들어 내는 능력을 본다. 다시 말해 서술형 평가는 지식의 저장량이 아니라 지식을 꺼내 재구성하는 힘을 측정한다.

규칙을 아는 것과 규칙을 쓰는 것은 다르다

여기서 많은 준비가 어긋난다. 문법을 별도 과목으로 떼어 내 규칙을 정리하고 문제를 반복해 풀면 문법 지식은 늘어난다. 그러나 그 지식이 실제 글쓰기의 정확성으로 그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제2 언어 습득(second language acquisition) 연구가 이 간격을 오래 다뤄 왔다. Rod Ellis는 학습자가 규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지식(explicit knowledge)과 말하고 쓰는 순간에 실제로 움직이는 지식(implicit knowledge)이 서로 구분되는 별개의 능력으로 측정된다는 점을 심리측정 연구로 보였다. 문법 시험 점수가 높은 아이와 자기 문장을 정확하게 쓰는 아이가 늘 같은 아이는 아니라는 뜻이다.

Robert DeKeyser의 실험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규칙을 배운 학습자들에게 서로 다른 연습을 시켰더니, 이해 연습을 한 집단은 이해에서 늘고 산출 연습을 한 집단은 산출에서 늘었다. 연습의 효과는 연습한 바로 그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문법 문제 풀이를 반복한 아이는 문제 풀이가 늘고, 쓰기의 정확성은 쓰기를 연습한 만큼 자란다.

이유는 단순하다. 접속사 목록을 외운 아이가 시험장에서 자기 주장을 두 문장으로 연결하는 순간, 외운 목록과 지금 쓰려는 문장 사이에는 건너야 할 간격이 있다. 이 간격은 규칙을 더 외운다고 좁혀지지 않는다. 자기 글을 쓰면서 그 규칙을 실제로 써 보는 경험을 통해서만 좁혀진다.

글쓰기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렇다면 서술형에서 통하는 글쓰기 힘은 어디에서 자랄까. 두 개의 뿌리가 있다.

하나는 읽기다. 좋은 문장의 구조, 문단이 논리를 쌓아 가는 방식, 근거를 대는 방식은 설명을 들어서가 아니라 좋은 글을 여러 번 읽으며 몸에 밴다. 그리고 이 관계는 한 방향이 아니다. Steve Graham과 Michael Hebert가 카네기 재단(Carnegie Corporation)의 의뢰로 정리한 메타분석 Writing to Read는, 읽은 글에 대해 쓰게 하는 활동, 곧 요약하고 질문에 답을 쓰고 자기 생각을 덧붙여 쓰는 활동이 독해력 자체를 끌어올린다는 것을 확인했다. 읽기가 쓰기의 재료가 되고, 쓰기가 다시 읽기를 깊게 만드는 순환이다. 빈 종이 앞에서 “자유롭게 써 보라”고 하면 아이는 막히지만, 방금 읽고 분석한 글이 있으면 쓸 거리가 생기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다른 하나는 구조화다. 서술형 답안은 감상문이 아니다. 읽은 것을 이해하고, 핵심을 골라내고, 자기 논리의 순서로 배열하고, 그것을 문장으로 조립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 과정을 훈련한 아이는 낯선 주제 앞에서도 “먼저 무엇을 말하고, 그다음 어떤 근거를 대고, 어떻게 마무리할지”의 틀을 스스로 세운다. 이것이 규칙 암기와 근본에서 다른 지점이다.

문법은 글쓰기 안에서 다룰 때 자기 것이 된다

이 원리를 수업의 모습으로 옮기면 이렇게 된다. 문법을 별도 과목으로 떼어 규칙만 돌리는 대신, 글을 쓰는 과정 안에서 그날 필요한 도구로 다룬다. 접속사 목록을 외우는 시간이 아니라, 접속사를 써서 자기 주장을 연결해 보는 시간이다. 그날 읽은 글에서 만난 표현과 문법 요소를 아이가 자기 글에 곧바로 써 보게 하면, 배운 것을 기억에서 꺼내 문장으로 조립하는 과정에서 막히는 지점이 저절로 드러난다. “이 문장을 어떻게 연결하지”라는 막힘이 생기는 바로 그 순간이 학습이 일어나는 지점이고, 교사의 질문과 피드백은 이 지점을 겨냥할 때 가장 힘이 세다. DeKeyser가 확인한 연습의 원리와 정확히 겹친다. 규칙은 그 규칙을 실제로 쓰는 연습 안에서만 손에 익는다.

쓰기가 읽기 위에 얹혀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텍스트에서 근거를 인용해 주장을 뒷받침하고, 서론과 본론과 결론의 구조로 자기 논리를 세우는 훈련은 서술형 답안이 요구하는 바로 그 능력이다. 이것은 시험을 위한 별도의 기술이 아니라, 깊이 읽고 자기 언어로 재구성하는 문해력(literacy)이 쌓인 결과로 따라온다.

AI를 어떻게 쓸 것인가

서술형 준비를 이야기하면 부모들은 종종 묻는다. “그럼 AI 첨삭 도구를 쓰면 되나요.” 여기서 갈림길이 생긴다.

AI에게 초안을 대신 쓰게 하거나 오류를 대신 고치게 하면, 아이는 자기가 무엇을 틀렸는지 모른 채 넘어간다. 자기 글의 어디가 막히는지 알아차리고 스스로 고치는 과정, 곧 글쓰기 힘이 자라는 바로 그 과정이 생략된다. AI가 매끈한 결과물을 내줄수록 아이 자신의 글쓰기는 오히려 자라지 않는 역설이 여기서도 반복된다.

판별 기준은 단순하다. 도구가 고치는가, 아이가 고치는가. AI가 어색한 곳의 위치만 짚어 주고, 무엇이 왜 문제인지 진단하고 고치는 일은 아이가 하며, 고친 결과를 어른이 확인하는 방식이라면 도구는 점검을 돕는다. 반대로 버튼 한 번에 매끈한 문장이 완성되어 나오는 방식이라면, 그 매끈함은 아이의 것이 아니다. 어떤 도구를 쓰든 판단과 검증은 사람의 몫으로, 막힌 곳을 알아차리고 고치는 인지 작업은 아이의 몫으로 남아 있어야 도구가 준비를 돕는다.

프로그램과 가정에서 판단하는 기준

방향을 알았다면 남는 질문은 실행이다. 어떤 프로그램이 이 원리대로 가르치는지, 집에서는 무엇부터 시작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정리한다.

글쓰기 프로그램을 고를 때 확인할 질문 세 가지

첫째, “아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쓴 글을 보여 주실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 좋은 답은 아이가 쓴 문단과 그 위에 남은 피드백의 흔적이다. 문법 문제 채점지와 진도표만 나온다면 그 프로그램의 중심은 쓰기가 아니다.

둘째, “문법은 언제 다루나요”라고 묻는다. 좋은 답은 쓰기 과제와 문법 지도가 같은 수업 안에 묶여 있다는 답이다. 문법 진도가 쓰기와 무관한 별도 시간표로 돌아간다면, 아이에게 쌓이는 것은 규칙으로 아는 지식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셋째, “고쳐 쓰기는 누가 하나요”라고 묻는다. 교사가 고쳐 준 매끈한 완성본은 보기에 좋지만, 고치는 사람이 아이가 아니면 정확성은 아이에게 남지 않는다. 아이가 스스로 고친 흔적이 남는 수업인지 확인한다.

집에서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루틴

가정에서는 Graham과 Hebert가 확인한 활동을 그대로 축소해 쓸 수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아이가 읽은 영어책이나 지문 하나를 골라 서너 문장으로 요약하게 하는 것이다. 판별식도 단순하다. 글에 나온 문장을 그대로 옮겼는가, 자기 문장으로 바꿔 썼는가. 처음에는 베끼는 요약이 나와도 괜찮다. 회차가 쌓이면서 최근에 읽은 글의 표현이 아이의 요약 속에 자기 문장의 형태로 다시 나타나는지, 이 신호 하나만 지켜보면 된다. 그 신호가 보이면 읽은 것이 쓸 재료로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아이의 현재 위치를 객관 지표로 확인하고 싶다면 ETS의 TOEFL Junior처럼 연령대에 맞춘 시험을 참고할 수 있다. 다만 성적표를 읽고 활용하는 방법은 이 글과 별개의 주제이고, 지표는 다음 읽기와 쓰기를 맞추는 재료이지 준비의 목표가 아니다.

준비의 방향은 규칙이 아니라 자기 글이다

서술형과 수행평가가 늘어나는 흐름 앞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준비는 규칙을 더 많이 외우게 하는 것이 아니다. 평가가 서술형으로 움직이는 이유 자체가 아이 자신의 글을 확인하려는 데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 힘은 두 곳에서 자란다. 좋은 글을 깊이 읽으며 문장과 논리의 구조를 몸에 익히는 데서, 그리고 읽은 것을 자기 논리로 구조화해 문장으로 조립하는 훈련에서 자란다. 문법은 그 글쓰기 안에서 도구로 다룰 때 실제 정확성으로 이어지고, AI는 아이 대신 쓰는 도구가 아니라 아이가 자기 글을 점검하고 스스로 고치도록 돕는 도구로 쓸 때 준비에 보탬이 된다.

지금 초5, 초6 시기는 그동안 원서로 쌓은 읽기 실력을 서술형에서 통하는 글쓰기의 형태로 바꿔 가기 좋은 때다. 평가가 어떻게 바뀌어도 자기 힘으로 읽고 쓴 글은 아이의 것으로 남는다. 에픽어학원의 글쓰기 수업도 읽은 글을 재료로 아이가 직접 쓰고 스스로 고치게 하는 이 원리 위에서 운영된다.

참고한 자료

  • 서울특별시교육청. (2023). 중학교, 고등학교 서술형 및 논술형 평가 확대 안내 및 교과별 평가 모델 개발, 보급.
  • Ellis, R. (2005). Measuring Implicit and Explicit Knowledge of a Second Language: A Psychometric Study.
  • DeKeyser, R. M. (1997). Beyond Explicit Rule Learning: Automatizing Second Language Morphosyntax.
  • Graham, S., & Hebert, M. (2010). Writing to Read: Evidence for How Writing Can Improve Reading. Carnegie Corporation of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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