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의 과학 | 10분 읽기

원서를 읽던 아이가 중등 독해 지문에서 막히는 이유

에픽어학원 , 읽기의 과학, 원서 중심, 데이터 기반 영어 교육

원서를 즐겁게 읽던 아이가 중등 독해 지문 앞에서 멈추는 일은 실력이 준 것이 아니라, 읽는 글의 종류가 바뀐 신호에 가깝다. 이야기책은 인물과 사건이라는 익숙한 뼈대를 따라가지만, 학술적이고 설명적인 지문은 주장과 근거, 원인과 결과라는 다른 구조를 요구하고 낯선 주제의 배경지식과 문장 사이를 잇는 추론을 함께 요구한다. 이 글은 서사 독해에서 정보 텍스트 독해로의 전환을 읽기 과학의 근거로 설명하고, 원서 다독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그 위에 학술 독해를 얹는 다음 단계를 제안한다.


실력이 준 게 아니라 글이 바뀐 것

상담에서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우리 아이는 영어 원서를 두껍게도 잘 읽었어요. 그런데 중등 독해 문제집을 펼치니 지문 앞에서 자꾸 멈춰요.” 몇 년을 즐겁게 읽어온 아이가 왜 갑자기 짧은 지문 하나에 걸리는지 부모는 당황스럽다. 실력이 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여기서 방향을 잘못 잡으면 “원서 읽기는 소용없었다”는 결론으로 기울기 쉽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아이가 못 읽게 된 것이 아니다. 아이가 읽어야 할 글의 종류가 바뀌었고, 그 새로운 글이 다른 능력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읽기가 아니다

이야기책을 읽는 일과 학술적인 설명문을 읽는 일은 겉으로는 둘 다 “영어 글을 읽는다”로 보인다. 그러나 아이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서로 다르다.

이야기책, 곧 서사 텍스트(narrative text, 인물과 사건을 시간 순서로 전개하는 글)는 예측 가능한 뼈대를 가진다. 주인공이 있고, 문제가 생기고, 사건이 이어지고, 결말이 온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이야기의 이 구조에 익숙하다. 누가 무엇을 했고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지를 따라가면 글이 열린다.

설명적이고 학술적인 글, 곧 정보 텍스트(informational text, 개념과 사실을 설명하거나 주장을 논증하는 글)는 뼈대가 다르다. 인물과 사건 대신 주장과 근거가 있고, 원인과 결과가 있고, 비교와 대조가 있고, 정의와 예시가 있다. “누가 무엇을 했나”가 아니라 “이 주장을 무엇이 뒷받침하나”, “이 현상의 원인은 무엇인가”를 따라가야 글이 열린다. 미국의 학년별 성취 기준인 Common Core State Standards(공통 핵심 성취 기준)도 문학 텍스트(RL)와 정보 텍스트(RI)를 아예 다른 영역으로 나누어 다룬다. 두 글이 요구하는 힘이 다르다는 것을 기준 자체가 인정하는 것이다.

중등으로 갈수록 정보 텍스트가 늘어난다

문제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읽어야 할 글이 정보 텍스트 쪽으로 급격히 기운다는 점이다. 초등 저학년의 글은 대부분 이야기지만, 중등에 가까워지면 과학, 사회, 역사, 시사 같은 주제의 설명적 지문이 빠르게 늘어난다. 중등 영어 독해 문제집과 공인 시험의 지문이 대체로 이 정보 텍스트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읽기 발달 연구자 Jeanne Chall(진 챌)은 읽기가 몇 단계를 밟아 자란다고 보았고, 그 여러 단계 가운데 이 시기의 전환을 특히 중요한 고비로 꼽았다. 어린 독자의 읽기가 글자를 소리로 바꾸고 이야기를 따라가는 일이었다면, 이 고비를 지난 읽기는 낯선 지식을 글에서 스스로 뽑아내는 일로 바뀐다. Chall은 이 변화를 “읽기를 배우는 단계(learning to read)에서 배우기 위해 읽는 단계(reading to learn)로의 이동”이라 표현했다. 그가 그린 단계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다음에는 하나의 설명을 받아들이는 데서 나아가, 여러 관점의 글을 견주어 읽는 단계가 이어진다. 중등에서 만나는 정보 텍스트는 이 긴 계단의 한 칸이고, 그 위로도 계단은 더 남아 있다.

원서를 잘 읽던 아이가 중등 지문에서 멈추는 첫 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이는 서사 독해에는 능숙해졌지만, 정보 텍스트라는 다른 구조를 읽는 연습은 아직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구조를 모르면 문장은 읽혀도 글이 안 읽힌다

정보 텍스트가 어려운 이유는 단어가 어려워서만은 아니다. 글이 조직된 방식이 이야기와 다르기 때문이다.

정보 텍스트에는 몇 가지 반복되는 짜임이 있다. 원인과 결과, 비교와 대조, 문제와 해결, 주장과 근거 같은 것이다. 숙련된 독자는 글을 읽으며 “이 글은 원인을 설명하고 뒤에서 결과로 가는구나”, “이 문단은 앞 주장의 근거구나” 하고 짜임을 잡는다. 짜임을 잡으면 문장 하나하나가 전체 안에서 어디에 놓이는지 보이고, 중요한 것과 부차적인 것이 구분된다.

미국의 읽기 연구자 Bonnie Meyer(보니 마이어)는 글의 상위 짜임을 파악하고 활용하는 학생이 같은 글을 더 잘 이해하고 더 오래 기억한다는 점을 일찍이 보였다. 이후의 여러 연구도 정보 텍스트의 조직 방식을 직접 배운 학생일수록 글의 요지를 잘 잡고 내용을 잘 남긴다는 결과를 되풀이해 확인했다. 반대로 짜임을 잡지 못하면, 아이는 문장을 하나씩은 읽어내면서도 글 전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잡지 못한다. 이야기책에서는 사건의 흐름이 자연스러운 안내선이 되어 주지만, 정보 텍스트에서는 그 안내선이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 아이가 스스로 짜임을 찾아내야 한다.

이것이 원서를 많이 읽은 아이에게도 정보 텍스트가 새로운 과제인 이유다. 이야기의 구조에 익숙한 것과 설명문의 구조에 익숙한 것은 다른 경험이고, 후자는 다른 텍스트를 충분히 만나며 따로 자란다.

배경지식이 없으면 문장 사이가 비어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배경지식이다. 정보 텍스트는 특정 주제에 대한 지식을 전제하고 쓰인다. 광합성, 화산, 민주주의, 경제 순환 같은 주제의 지문은 그 분야의 기본 개념을 어느 정도 아는 독자를 상정한다.

읽기가 배경지식에 크게 기댄다는 것은 읽기 과학에서 잘 확립된 사실이다. 일리노이 대학교의 Richard Anderson(리처드 앤더슨)이 정리한 스키마 이론(Schema Theory, 뇌에 저장된 배경지식의 틀이 이해를 좌우한다는 이론)이 이 점을 설명한다. “왕이 죽었다. 그리고 여왕이 죽었다”는 문장을 읽을 때, 왕실이라는 배경지식이 있는 독자는 두 죽음 사이의 관계를 짐작하지만, 그 틀이 없는 독자는 두 사건을 나란히 놓인 사실로만 받아들인다. 같은 문장도 독자의 배경지식에 따라 이해의 깊이가 달라진다.

이야기는 세계가 익숙하고, 학술 지문은 낯설다

이야기책은 대체로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세계를 다룬다. 우정, 모험, 가족, 학교 같은 장면은 아이가 이미 아는 세계다. 그래서 아이는 문장 사이의 빈칸을 자기 경험으로 어렵지 않게 메운다.

학술적 지문은 다르다. 아이가 직접 겪지 않은 개념과 현상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문장은 다 읽었는데 문장과 문장 사이가 텅 비어 있는 느낌이 든다면, 어휘보다 배경지식이 병목일 수 있다. 이 병목은 단어를 더 외운다고 채워지지 않는다. 다양한 주제의 글을 폭넓게 읽으며 여러 분야의 스키마를 쌓아야 채워진다. 흥미로운 점은 이 지점에서 원서 읽기의 가치가 오히려 커진다는 것이다. 문학뿐 아니라 과학, 역사, 자연 같은 주제를 다룬 논픽션 원서를 함께 읽어 온 아이는, 학술 지문이 요구하는 배경지식의 밑돌을 이미 상당히 쌓아 둔 셈이다.

추론을 하지 않으면 표면만 읽힌다

세 번째 이유는 추론이다. 정보 텍스트는 필요한 것을 늘 문장에 다 적어 두지 않는다. 원인과 결과의 연결, 주장과 근거의 관계, 문단 사이의 논리적 흐름은 글에 드러나 있지 않고 독자가 이어 붙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영국의 읽기 연구자 Kate Cain(케이트 케인)과 Jane Oakhill(제인 오크힐)은 오랜 연구에서, 단어는 정확히 읽어내지만 독해에서 유독 약한 아이들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아이들의 공통된 어려움 중 하나가 추론(inference, 글에 직접 쓰이지 않은 정보를 문맥과 배경지식으로 채워 넣는 사고)이었다. 문장을 잇고, 대명사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잡고, 글에 없는 인과를 메우는 이 힘이 약하면, 해독이 아무리 정확해도 이해는 표면에 머문다.

이야기의 추론과 학술 지문의 추론은 결이 다르다

이야기책에서도 추론은 일어난다. 인물의 표정에서 마음을 짐작하고, 다음 사건을 예상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런 추론은 사람과 감정에 대한 것이어서 아이에게 비교적 자연스럽다.

학술 지문의 추론은 결이 다르다. “이 실험 결과가 앞의 가설을 뒷받침하는가”, “이 두 현상은 인과인가 단순한 동시 발생인가”, “저자가 이 예시를 든 의도는 무엇인가” 같은, 논리와 개념에 대한 추론이다. 이런 추론은 이야기책만으로는 충분히 훈련되지 않는다. 주장과 근거가 있는 글을 반복해서 읽고, 그 관계를 짚어 보는 경험 속에서 자란다. 원서를 잘 읽던 아이가 중등 지문의 “글쓴이가 말하려는 바로 알맞은 것은” 같은 문항 앞에서 멈추는 것은, 바로 이 결이 다른 추론이 아직 덜 자랐다는 신호일 수 있다.

부모가 볼 수 있는 신호

집에서 부모가 관찰할 수 있는 신호는 몇 가지로 나뉜다.

첫째, 아이가 어떤 글에서 멈추는지 살펴본다. 이야기책은 여전히 잘 읽는데 설명문과 논픽션 지문에서만 자꾸 멈춘다면, 이것은 실력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정보 텍스트 경험이 아직 얇다는 신호에 가깝다.

둘째, 지문을 읽은 뒤 아이가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가 두 번째 단서다. 세부 내용은 기억하는데 “그래서 이 글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라는 질문에 막힌다면, 글의 짜임을 잡는 힘이나 문장을 잇는 추론이 병목일 수 있다.

셋째, 주제에 따라 편차가 큰지도 눈여겨볼 만하다. 익숙한 주제의 글은 잘 읽는데 낯선 분야의 글에서만 무너진다면, 어휘보다 배경지식의 폭이 부족한 상태일 수 있다.

이 신호들은 아이를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독해가 안 된다”는 한 문장으로 뭉뚱그리면 처방이 나오지 않는다. 구조인지, 배경지식인지, 추론인지를 나눌 때 비로소 다음 단계가 보인다.

원서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얹는 것

여기서 한 가지 오해를 짚고 싶다. 중등 지문이 어렵다고 해서 원서 읽기가 헛수고였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여러 해 원서를 읽어 온 아이는 해독의 자동화, 넉넉한 어휘, 긴 글을 끝까지 읽어내는 체력, 그리고 여러 주제에 걸친 배경지식을 이미 가지고 있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 두꺼운 자산이다. 정보 텍스트 독해는 이 자산 위에 짜임 읽기와 논리적 추론이라는 층을 새로 얹는 일이지, 밑돌을 허물고 다시 쌓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필요한 것은 원서를 덮고 문제풀이로 갈아타는 것이 아니다. 원서 다독을 이어 가되, 그 위에 정보 텍스트를 다루는 훈련을 더하는 것이다. 논픽션 원서와 설명적 지문을 함께 읽으며 원인과 결과, 주장과 근거의 짜임을 눈에 익히고, 낯선 주제의 배경지식을 넓히고, 글에 쓰이지 않은 논리를 이어 붙이는 추론을 교사와 함께 연습하는 일이다.

집에서 부모가 먼저 시작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새 논픽션을 고를 때는 아이가 이미 좋아하는 주제, 이를테면 공룡이나 우주나 동물처럼 배경지식이 어느 정도 쌓인 분야부터 고르면, 아이가 낯선 내용에 힘을 다 쓰지 않고 글의 짜임에 눈을 돌릴 여유가 생긴다. 책을 덮은 뒤에는 줄거리를 되묻는 대신 짜임을 묻는 질문을 건네 본다. “이 글은 무엇의 원인을 설명하고 있어”, “이 문단은 앞 내용을 뒷받침해, 아니면 다른 이야기를 해”, “글쓴이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뭘까” 같은 물음이다. 이런 질문은 아이가 문장 하나를 넘어 글 전체의 뼈대를 의식하게 만든다.

글의 난이도를 아이에게 맞추는 일도 이 시기에는 특히 중요하다. 정보 텍스트는 너무 어려우면 짜임도 배경지식도 추론도 한꺼번에 무너지기 때문이다. 아이가 대부분은 읽어내되 중간중간 교사의 질문과 도움이 필요한 지점, 그 자리에서 새로운 힘이 자란다. 그래서 이 전환기의 성장은 감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지표로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만 11세 이상을 위한 TOEFL Junior 같은 공인 시험이 성적표에 아이의 읽기 수준을 다음에 읽을 책과 같은 척도로 적어 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원서를 잘 읽던 아이가 중등 지문에서 멈추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신호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읽기에서 지식을 뽑아내는 읽기로 넘어가는 문 앞에 아이가 서 있다는 신호다. 그 문을 여는 열쇠는 지난 몇 년의 읽기를 버리는 데 있지 않고, 그 위에 다음 층을 정확히 얹는 데 있다. 에픽이 아이의 읽기 수준을 지표로 확인하고 글의 난이도를 맞추는 이유도, 그 문 앞에서 짜임과 배경지식과 추론이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게 도우려는 데 있다.

참고한 자료

  • Chall, J. S. (1983). Stages of Reading Development.
  • Anderson, R. C. (1984). Role of the Reader’s Schema in Comprehension, Learning, and Memory.
  • Cain, K., & Oakhill, J. (2007). Children’s Comprehension Problems in Oral and Written Language.
  • Meyer, B. J. F., Brandt, D. M., & Bluth, G. J. (1980). Use of Top-Level Structure in Text: Key for Reading Comprehension of Ninth-Grade Students.
  • National Governors Association Center for Best Practices & Council of Chief State School Officers. (2010). Common Core State Standards for English Language Arts.
  • ETS. TOEFL Junior Tests: Scoring and Reporting. https://www.ets.org/toefl/junior/scoring-reporting.html

우리 아이 영어, 지금 어디쯤일까요?

정교한 진단 상담으로 확인해보세요

지금 예약하기
간단 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