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디지털교과서는 왜 '교과서'에서 '교육자료'가 되었나
2025년 도입된 AI 디지털교과서는 1년여 만에 법이 그 지위를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바꿨고, 감사원 감사에서 평균 활용률은 8.1%에 그쳤다. 이 글은 도입부터 격하까지의 사실을 시간 순으로 정리하고, 검증 전 전면 도입과 교사 소외, 도구를 문제보다 앞세운 순서라는 밑바탕을 짚는다. 스웨덴의 종이책 회귀와 카롤린스카 연구소 성명이 같은 교훈을 가리킨다는 점을 확인한 뒤, 학교나 학원이 새 도구를 도입할 때 부모가 물어볼 네 가지 질문으로 닫는다.
3월에 받아 온 태블릿, 1년 새 바뀐 이름
올봄에도 많은 집에서 같은 장면이 반복됐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학교에서 태블릿을 받아 오고, 학부모 단체 대화방에는 물음표가 쌓인다. 옆 반은 매일 쓴다는데 우리 반은 거의 안 쓴다거나, 같은 지역인데 학교마다 방침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작년까지 교과서라 불리던 물건이 올해는 학교마다 다른 이름과 다른 무게로 놓여 있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 영어 공부의 기준으로 삼아도 되는 물건인지부터 헷갈린다.
이 글은 그 물건, AI 디지털교과서(AI Digital Textbook, 이하 AI 교과서)를 두고 누가 옳았는지를 가리려는 글이 아니다. 한 나라가 큰돈과 큰 기대를 걸고 벌인 교육 실험이 왜 이렇게 흘렀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어떤 판단 기준을 남기는지를 본다. 정책의 승패가 아니라 도구와 학습의 관계에 대한 교훈이 우리의 관심사다.
1년여 만에 지위가 바뀐 교과서
사실관계부터 시간 순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교육부는 2025년 3월 초등학교 3, 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의 영어, 수학, 정보 과목에 AI 교과서를 도입했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에 실린 계획을 보면 취지는 분명했다. 학생마다 다른 속도에 맞춘 학습을 돕고 교육 격차를 줄인다는 것이었다. 영어 과목은 음성 인식으로 말하기 연습까지 지원한다고 했다.
그런데 도입을 앞둔 2024년 12월, 국회는 초중등교육법을 고쳐 AI 교과서를 교과서가 아니라 교육자료로 규정했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개정안은 교과서의 범위를 종이책과 전자책으로 한정하고, 소프트웨어 형태의 학습 도구는 교육자료로 분류했다. 정부가 이 개정에 재의를 요구하면서 한 차례 진통을 겪었지만, 2025년 8월 국회 재의결로 교육자료라는 지위가 최종 확정됐다.
이름 하나 바뀐 일로 보이지만 실제 무게는 다르다. 교과서였다면 학교가 채택할 의무가 있다. 교육자료가 되면 학교장과 학교운영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쓸 수도, 쓰지 않을 수도 있다. 부모들이 겪은 학교마다 다른 풍경은 여기서 나왔다. 그리고 2026년 들어 교육부는 이름을 AI 교육자료로 넓히고, 기존의 디지털 선도학교를 디지털활용선도학교 1,900곳 체제로 다시 짰다. 방점은 도입에서 활용으로 옮겨졌고, 검증된 도구를 골라 쓰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숫자가 먼저 말한다
지위 변화보다 더 눈여겨볼 것은 교실의 숫자다. 감사원이 2025년 말 내놓은 감사 결과에 따르면, 학기 중 열흘 이상 쓴 학생을 기준으로 한 평균 활용률은 8.1%에 그쳤다. 한 번도 접속하지 않은 학생은 평균 60%였고, 고등학교 1학년 영어에서는 그 비율이 72.8%까지 올라갔다.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 500여 명 가운데 85.5%가 쓰지 않거나 도중에 그만두었다. 3년간 투입된 예산은 1조 4천억 원대였다.
교사들이 사용을 접은 가장 큰 이유는 기술이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종이 교과서를 화면으로 옮겼을 뿐 이렇다 할 새 가치를 못 느꼈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감사원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의견을 충분히 모으거나 시범 운영을 거치지 않은 채 전국에 한꺼번에 넣은 점을 문제로 짚었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고 싶다. 이 숫자를 기술은 교실에 들이면 안 된다는 증거로 읽으면 잘못이다. AI로 학습을 개인에 맞춘다는 생각 자체에는 쓸모가 있다. 문제는 그 생각을 검증하고 자리 잡게 하는 순서에 있었다.
이렇게 된 밑바탕 세 가지
큰 실험이 짧은 시간에 접힌 데에는 몇 가지 공통된 밑바탕이 있다.
첫째, 검증보다 일정이 앞섰다. 어떤 도구가 아이 학습을 실제로 얼마나 돕는지는 작은 규모로 먼저 확인하고 넓혀 가는 것이 상식이다. AI 교과서는 그 근거가 쌓이기 전에 전국 규모부터 갖췄다. 효과를 증명한 뒤 퍼뜨린 것이 아니라, 퍼뜨린 뒤에 효과를 묻게 된 셈이다.
둘째, 매일 아이를 마주하는 사람이 빠졌다. 교실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교사다. 그런데 설계 단계에서 교사와 현장의 판단이 충분히 들어가지 않았고, 정작 도입 뒤에는 그 교사들이 도구를 외면했다. 쓸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은 도구가 교실에서 겉돈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셋째, 문제보다 도구가 먼저였다. 좋은 수업은 이 아이의 어떤 학습 문제를 풀 것인가에서 출발한다. AI 교과서를 둘러싼 논의는 자주 어떤 기기와 프로그램을 넣을 것인가에서 시작했다. 그래서 교사들이 남긴 평가가 뼈아프다. 새로 할 수 있게 된 일이 없이 하던 일을 화면으로 옮겼을 뿐이라는 말이다.
다른 나라에서 온 같은 교훈
이 이야기는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디지털 교육의 앞선 나라로 꼽히던 스웨덴이 앞서 비슷한 길을 되짚었다. 스웨덴의 초등 4학년 읽기 성취는 국제 읽기 문해력 연구(PIRLS, Progress in International Reading Literacy Study)에서 2016년 555점에서 2021년 544점으로 내렸다. 하락의 원인으로는 팬데믹과 언어 배경이 다른 학생의 증가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지목되어, 디지털화 하나만의 탓으로 못 박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스웨덴 정부는 2023년 유아 단계의 디지털 기기 의무화를 되돌리고 종이책과 손글씨의 비중을 다시 늘리는 쪽을 택했다. 카롤린스카 연구소(Karolinska Institutet)는 이때 “디지털 도구가 학습을 돕기보다 저해한다는 명확한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밝혔다.
스웨덴의 선택은 기술을 단죄한 것이 아니라,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채 기기부터 늘린 방향을 조심스럽게 되돌린 쪽에 가깝다. 한국이 2026년에 활용과 검증으로 방향을 튼 것과 스웨덴의 후퇴는 결국 같은 문장으로 요약된다. 도구는 학습을 분명히 도울 때에만 교실에 들어가고, 그 판단의 주어는 사람이다. 두 나라 모두 화면을 없애지는 않았다. 다만 검증과 사람의 판단을 도구 앞에 놓았을 뿐이다.
부모가 새 도구 앞에서 물어볼 네 가지
이 교훈은 국가 정책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학교든 학원이든 새 앱이나 AI 프로그램을 도입한다고 알려 올 때, 부모가 그대로 쓸 수 있는 질문으로 바꿔 두면 쓸모가 있다.
첫째, 검증의 근거를 묻는다. 이 도구가 아이 학습을 실제로 개선한다는 근거가 있는지, 그것이 만든 회사의 홍보 자료인지 아니면 이해관계가 없는 곳의 확인인지 본다.
둘째, 사람 교사의 자리를 묻는다. 도구가 선생님을 대신하는지, 선생님의 판단을 돕는지 구분한다. 아이가 쓴 글과 아이가 낸 답을 끝에 가서 사람이 읽고 되짚어 주는지가 갈림길이다.
셋째, 데이터의 쓰임을 묻는다. 아이의 학습 기록이 어디에 쌓이고 무엇에 쓰이는지 확인한다. 한국의 실험에서도 수많은 학생의 학습 데이터가 어디로 가는지가 뒤늦게 논쟁이 됐다.
넷째, 무엇이 달라지는지를 묻는다. 종이로 하던 일을 화면으로 옮긴 것뿐인지, 아이가 못 하던 일을 하게 되는지 본다. 교실 실험이 남긴 가장 아픈 평가가 바로 이 질문에서 나왔다.
부모가 들고 나갈 기준
국가 단위 실험이 남긴 교훈은 의외로 단순하다. 도구가 학습의 주어가 되면 실험은 겉돌고, 사람이 주어이고 도구가 그 손에 들린 목적어일 때 학습이 는다. 부모가 이 사건에서 챙길 것은 특정 기술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새 도구를 만났을 때 물어볼 질문의 목록이다.
판단은 어렵지 않다. 학교나 학원이 위의 네 질문에 또렷하게 답하면 믿고 맡길 만하고, 얼버무리면 판단을 미뤄도 좋다. 집에서 볼 수 있는 신호도 하나 있다. 그 도구를 쓴 뒤 아이가 새로 할 수 있게 된 일을 부모가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 도구는 아직 종이를 화면으로 옮긴 단계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수업에서 에듀테크를 쓰되 사람 교사의 판단과 깊은 읽기를 그 앞에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가 글의 오류 위치를 빠르게 짚어 주더라도 무엇을 고칠지 판단하는 일은 아이가, 마지막 검증은 교사가 맡는 순서를 우리는 지킨다.
참고한 자료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4). 2025년부터 수학, 영어, 정보 교과에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912094
- 뉴시스. (2024). “AI교과서는 교육자료” 본회의 통과. https://www.newsis.com/view/NISX20241226_0003011485
- 유스연합. (2025). 교육자료 된 AI디지털교과서, 수포자 대안 될까. https://www.youthassembly.kr/news/952477
- 서울신문. (2025). 구독료 매년 1조 넘는데 AI 교과서 활용률은 8%뿐. https://www.seoul.co.kr/news/society/education-news/2025/12/18/20251218009007
- 에듀모닝. (2026). AI 디지털교과서 이후, 교육부는 무엇을 조정하고 있나. https://edumorning.com/articles/1558
- VOA. (2023). Sweden Brings More Books, Handwriting Practice Back to Its Tech-Heavy Schools. https://www.voanews.com/a/sweden-brings-more-books-handwriting-practice-back-to-its-tech-heavy-schools/7262263.html
- GIGAZINE. (2025). Sweden plans to return to paper books and handwriting amid a decline in reading comprehension. https://gigazine.net/gsc_news/en/20250402-sweden-books-handwriting-practice-bac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