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육 가이드 | 5분 읽기

엄마가 영어를 못해도, 아이의 영어는 도울 수 있다

에픽어학원 , 읽기의 과학, 원서 중심, 데이터 기반 영어 교육

부모가 영어에 자신이 없으면 아이 영어 교육에서 손을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연구가 가리키는 부모의 역할은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환경을 만드는 사람이다. 가정의 읽기 환경, 즉 책에 대한 접근과 책을 둘러싼 대화가 아이의 문해력 성장을 예측한다. 이 글은 부모의 발음이나 실력이 아니라 무엇이 실제로 아이의 성장을 돕는지 정리하고, 영어에 자신 없는 부모도 할 수 있는 역할을 제안한다.


엄마표 영어 앞에서 작아지는 마음

엄마표 영어를 검색하면 부지런한 부모들의 기록이 먼저 쏟아진다. 새벽에 일어나 원서 음원 목록을 정리하고, 아이보다 먼저 영어 문장을 외우고, 그날의 진도표를 사진으로 남기는 풍경이다. 커뮤니티에는 부모가 먼저 영어를 공부하라는 조언이 흔하고, 발음이 걱정이라는 글에는 부모용 강의 추천이 답글로 달린다. 이 풍경 앞에서 영어에 자신이 없는 부모는 조용히 창을 닫는다. 시작하기도 전에 자격 시험에서 떨어진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의 읽기 발달을 오래 추적해 온 연구들이 그리는 부모의 역할은 이 풍경과 다르다. 부모는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가 영어와 자주, 편하게 만나도록 환경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역할에 부모의 영어 실력은 자격 요건이 아니다.

아이의 성장을 예측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정의 문해 환경(home literacy environment)을 다룬 연구들은 아이의 언어와 읽기 발달을 예측하는 요인을 수십 년간 살펴 왔다. 반복해서 확인된 것은 부모의 유창함이 아니라, 집에 책이 얼마나 가까이 있고 책을 둘러싼 대화와 활동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느냐였다. 캐나다의 연구자 Sénéchal과 LeFevre는 5년에 걸친 종단 연구에서 부모와 함께한 책 경험이 아이의 어휘와 읽기 발달로 이어지는 경로를 보여 주었고, Bus와 동료들은 여러 연구를 종합한 분석에서 함께 책을 읽는 경험이 읽기 학습의 성공과 연결된다는 점을 확인했다.

여기서 범위를 정직하게 말해 둘 필요가 있다. 이 연구들은 부모가 책의 언어를 모국어로 쓰는 가정을 주로 다뤘다. 부모 자신이 영어에 서툰 한국 가정에 이 결과를 숫자 그대로 옮겨 읽을 수는 없다. 다만 외국어 학습 쪽 연구의 방향도 다르지 않다. Dixon과 동료들은 제2언어 습득 연구를 폭넓게 종합한 2012년 논문에서, 가정의 배경과 문해 환경이 제2언어 성취와 관련된다는 점과 함께, 집에서 모국어를 쓰는 것이 제2언어 습득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점을 정리했다. 부모가 영어로 읽어 주지 못해도, 책이 가까이 있고 그 책을 두고 한국어로 이야기가 오가는 집은 이미 연구가 말하는 좋은 환경에 가깝다.

가르치기와 환경 만들기는 다른 일이다

이 구분이 중요하다. 아이에게 영어를 직접 가르치는 일은 전문성이 필요한 일이고, 그 부분은 교사와 시스템의 몫이다. 그러나 아이가 매일 영어를 만날 시간과 자리를 마련하는 일, 그 만남을 즐거운 경험으로 지켜 주는 일은 부모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 부모가 못하는 것은 가르치기이지 환경 만들기가 아니다.

발음이 부족해도 할 수 있는 것

부모가 영어에 자신이 없어도 아이의 성장에 기여할 방법은 여러 갈래다.

  • 함께 있어 주기. 아이가 영어책을 읽거나 음원을 들을 때 곁에 있는 것만으로 그 시간이 혼자가 아니게 된다. 발음을 완벽하게 읽어 줄 필요는 없다. 그림을 함께 보고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훌륭한 읽기 경험이고, 앞서 본 것처럼 모국어 대화는 영어 습득을 방해하지 않는다.
  • 음원과 영상의 힘 빌리기. 발음이 걱정된다면 원어민 음원이 대신 읽어 주게 하고, 부모는 아이의 반응을 함께 나눈다. 오디오북이나 그림책 음원은 부모의 발음을 보완하는 좋은 도구다.
  • 관심 보이기. “오늘 읽은 책 무슨 이야기였어?”라는 질문 하나가 아이에게 영어가 관심받는 일이라는 신호를 준다.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관심은 전해진다.
  • 시간 지켜 주기. 매일 같은 시간에 짧게라도 영어를 만나는 리듬을 지키는 것은 실력이 아니라 꾸준함의 문제다. 그리고 꾸준함은 부모가 가장 잘 지킬 수 있는 것이다.

환경 만들기로 풀리지 않는 것

역할을 나누는 선도 함께 그어 두는 편이 낫다. 환경은 부모의 몫이지만, 환경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볼 수 있는 신호는 두 가지다.

첫째, 책과 음원을 꾸준히 접하는데도 아이가 글자와 소리를 연결하는 일 자체에서 오래 제자리라면, 노출의 양이 아니라 해독을 배우는 방식의 문제일 수 있다. 글자와 소리의 관계는 체계를 갖춰 배울 때 잘 자라는 영역이라,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둘째, 아이가 특정 책이 아니라 영어책 전부를 오래 피한다면, 지금 만나는 책의 수준이나 방식이 아이와 맞지 않다는 신호일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더 긴 인내가 아니라 아이의 현재 단계를 다시 보는 일이다.

두 경우 모두 부모의 실패가 아니다. 가르치는 부분은 배운 사람의 손에 맡기고, 부모는 시간과 태도를 지키는 자리로 돌아오면 된다. 역할이 나뉘어 있다는 사실이 부모 역할의 크기를 줄이지는 않는다.

미안함을 내려놓아도 되는 이유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영어를 잘하는 부모가 아니라, 영어를 가까이 두고 그 시간을 반겨 주는 부모다. 아이는 언어보다 태도를 먼저 읽기 때문에, 부모가 영어를 불편해하는 기색이 잦으면 그 긴장이 아이에게 전해지기 쉽다. 반대로 부모가 서툴러도 편안하게 책장을 함께 넘기면, 아이는 영어를 무서워할 이유를 따로 배우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경향의 이야기이지 법칙이 아니다. 부모의 표정 하나가 아이의 영어를 결정하지는 않으니, 이 문장이 새로운 걱정거리가 될 이유도 없다.

실력의 공백은 교사와 도구가 채운다. 부모가 채우는 것은 아이가 영어를 만나는 태도와 환경이고, 그것은 어떤 교재보다 오래 남는다.

참고한 자료

  • Sénéchal, M., & LeFevre, J. (2002). Parental Involvement in the Development of Children’s Reading Skill: A Five-Year Longitudinal Study.
  • Bus, A. G., van IJzendoorn, M. H., & Pellegrini, A. D. (1995). Joint Book Reading Makes for Success in Learning to Read: A Meta-Analysis on Intergenerational Transmission of Literacy.
  • Dixon, L. Q., Zhao, J., Shin, J.-Y., Wu, S., Su, J.-H., Burgess-Brigham, R., Gezer, M. U., & Snow, C. E. (2012). What We Know About Second Language Acquisition: A Synthesis From Four Perspec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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