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영어는 어쩌다 문해력 시험이 되었나
2026학년도 수능 영어 1등급은 3.11%로 절대평가 도입 후 가장 낮았다. 시험이 어려워진 방향은 뚜렷하다. 단어와 문법이 아니라 추상 개념과 논증 구조를 따라가는 읽기를 묻는다. 이 글은 평가원 채점 데이터와 지문 출처 보도, 독해 연구를 바탕으로 해석은 되는데 이해가 안 된다는 현상의 원인을 짚고, 담화 수준의 읽기 체력이 초등부터 수준에 맞는 원서 깊은 읽기와 지도로 쌓이는 이유, 부모가 지금 확인할 세 가지 신호를 정리한다.
90점만 넘으면 1등급인 시험에서 생긴 일
영어는 초등 때 끝내 놓고 중등부터는 수학에 시간을 쓰라는 조언이 있다. 어차피 절대평가라 90점만 넘기면 되는 과목이라는 계산이다. 초등 부모라면 학원 설명회에서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든 한 번쯤 들어 본 말이다. 그런데 지난겨울, 이 계산의 전제가 흔들렸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2026학년도 수능 채점 결과에서 영어 1등급은 3.11%였다. 절대평가가 도입된 2018학년도 이후 가장 낮았고, 전년도 6.22%의 절반 수준이었다. 올해 6월 모의평가에서도 영어 1등급은 4.13%로, 상대평가인 국어(5.38%)와 수학(4.83%)보다 적었다. 등수를 매기지 않겠다고 만든 시험에서, 등수를 매기는 시험보다 1등급이 귀해진 것이다.
절대평가의 도입 취지는 학교 영어교육을 정상화하고 수험 부담과 사교육비를 줄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뉴스핌 분석에 따르면 도입 이후 치러진 수능과 모의평가 28회 가운데 1등급이 목표 범위인 6%에서 10%에 든 시험은 10회에 그친다. 2025학년도 6월 모의평가에서는 1.47%까지 내려간 적도 있다. 논란은 나라 밖으로도 번졌다. BBC는 한국의 영어 시험을 보도하며 칸트를 다룬 지문을 독자에게 직접 풀어보라고 소개했고, 시험 난이도에 책임을 지고 평가원장이 물러났다.
우리는 이 숫자를 위협으로 읽지 않는다. 숫자가 말해 주는 것은 하나다. 이 시험은 더 이상 단어와 문법의 시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험이 묻는 것은 단어가 아니라 논증이다
숫자보다 지문을 보면 시험의 성격이 더 뚜렷하다. 2026학년도 수능 24번 지문의 원저자인 영국 리즈베켓대 스튜어트 모스 교수의 반응이 문화일보에 보도됐다. 자신이 책을 쓰며 만든 합성어가 문제로 출제된 것에 놀랐고, 원어민조차 모르는 단어라 시험에 나와서는 안 됐다는 의견이었다. 그해 수능 이의신청 675건 가운데 400건 이상이 이 문항에 몰렸다.
고난도 문항의 뿌리는 더 깊다. 시사저널이 2023년 임종성 전 서울시립대 교수의 조사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수능 영어의 고난도 구간인 31번부터 40번 지문 대부분은 미국 대학 전공서적이나 석박사 과정 교재에서 인용된다. 교육공학, 경제학, 심리학 같은 분야의 학술 텍스트가 원문이다.
최근에 갑자기 생긴 일도 아니다. 고려대 엄혜랑의 2022년 연구는 절대평가 도입 이후 네 해의 수능 지문을 분석해, 어휘 복잡성과 통사적 복잡성이 낮아지지 않고 일관되게 유지되었다고 보고했다. 평가 방식은 바뀌었지만 텍스트의 수준은 처음부터 내려온 적이 없다.
이런 지문에서 점수를 가르는 것은 단어량이 아니다. 필자가 어떤 추상 개념을 세우고, 어떤 반례를 들고, 어디에서 방향을 트는지 따라가는 능력이다. 낯선 단어 한두 개는 문맥으로 건널 수 있지만, 논증의 흐름을 놓치면 아는 단어로 채워진 문장 앞에서도 길을 잃는다.
해석은 되는데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의 정체
수험생 커뮤니티에서 반복되는 말이 있다. 해석은 되는데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이다. 올해 6월 모의평가가 그런 시험이었다. 유리의 분자 구조를 다룬 지문과 감정이 지각을 왜곡하는 과정을 다룬 지문을 두고, 한국어로 옮겨 놓아도 내용을 잡기 어렵다는 분석이 언론에서 나왔다.
읽기 연구는 이 현상을 오래전부터 설명해 왔다. 인지심리학자 Walter Kintsch는 독해를 층위로 나눈다. 문장 하나하나의 뜻을 처리하는 층위가 있고, 그 문장들을 엮어 글이 그리는 상황 전체를 머릿속에 짓는 층위, 곧 상황 모델(situation model)이 있다. 어휘와 구문 지식은 첫 층위를 열어 주지만, 상황 모델은 문장 사이의 관계를 잇고 배경지식을 불러와 독자가 직접 짓는 것이다. 해석은 되는데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은, 첫 층위는 통과했지만 두 번째 층위가 지어지지 않았다는 정확한 자기 보고인 셈이다.
수능 영어 강사들도 같은 진단을 내린다. 이름난 강좌들의 공통 설계를 보면, 먼저 문장 해석을 몸에 배게 만들고 그 위에서 글 전체의 논리를 재구성하는 훈련으로 넘어간다. 고3 겨울에 단어장을 늘리는 대신 지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는 연습을 시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이 1년 안에 응급으로 만들어 내려는 것이 바로 문장 단위를 넘어선 담화(discourse) 수준의 읽기 체력이다.
읽기 체력은 3년 만에 압축되지 않는다
이 체력이 누적으로 쌓이는 능력이라는 근거가 있다. Suzanne Mol과 Adriana Bus는 2011년 Psychological Bulletin에 실은 메타분석에서 유아부터 대학생까지 99개 연구를 종합해, 여가 시간의 책 읽기 경험과 언어와 읽기 능력의 관계를 추적했다. 눈여겨볼 것은 방향이다. 읽기 경험이 언어 능력의 개인차를 설명하는 비중은 유치원 시기 12%에서 대학 시기 34%까지,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커졌다. 두 사람은 이를 상승 나선(upward spiral)이라고 불렀다. 잘 읽는 아이가 더 읽고, 더 읽은 이력이 다시 읽기 능력을 끌어올리는 순환이다. 뒤집어 말하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때까지 쌓인 읽기 이력이 성취를 가르는 몫이 커진다. 단어와 풀이 요령은 몇 달에 압축되지만, 읽기 이력은 시간이 재료다.
다만 이 연구를 많이 읽히면 저절로 된다는 뜻으로 읽으면 절반만 읽은 것이다. 상승 나선에 올라타는 데는 조건이 있다. 하나는 아이가 이해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책이고, 다른 하나는 읽은 것을 꺼내 확인하는 과정이다. 너무 어려운 책은 문장 층위에서 읽기를 멈추게 하고, 확인 없는 다독은 상황 모델 없이 눈만 지나가는 습관을 굳히기 쉽다. 수준에 맞는 원서를 근거를 가지고 고르고, 다시 말하기와 근거 찾기, 요약으로 이해를 밖으로 꺼내는 지도가 붙을 때 읽기량은 읽기 체력으로 바뀐다.
초등에서 중등까지의 원서 깊은 읽기가 기르는 것이 정확히 이 목록이다. 긴 글을 끝까지 붙드는 지구력, 문단과 문단 사이의 논리를 잇는 습관, 낯선 개념을 문맥으로 견디는 힘, 그리고 이야기 밖의 설명하는 글을 읽는 경험. 수능 지문의 원천이 학술 텍스트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 능력들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부모가 지금 볼 수 있는 세 가지 신호
그래서 초등 부모가 지금 할 일은 문제집을 앞당기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읽기가 어느 층위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보는 것이다. 세 가지 질문이면 된다.
첫째, 아이가 읽은 것을 자기 말로 다시 말할 수 있는가. 줄거리 암송이 아니라 “주인공은 왜 그랬을까”, “글쓴이는 무엇을 반대하고 있을까” 같은 질문에 자기 문장으로 답하는지 본다. 답이 나오면 상황 모델이 지어지고 있다는 신호다.
둘째, 지금 읽는 책이 아이의 수준과 맞는지 알고 있는가. 표지의 권장 연령이나 베스트셀러 목록이 아니라, 아이가 실제로 어느 수준의 글에서 이해를 유지하는지 근거를 가지고 책을 고르는지 본다. 감으로 고른 책이 계속 어렵거나 계속 쉬우면 나선은 돌지 않는다.
셋째, 이야기책 바깥의 글도 읽고 있는가. 과학과 인물, 사회를 설명하는 글은 주장과 근거, 문제와 해결이라는 뼈대를 가진다. 수능 지문의 뼈대와 같은 구조다. 초등 수준의 논픽션 원서로도 이 구조는 충분히 만날 수 있다.
세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면, 시험 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아이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은 낮아진다. 답이 어렵다면 지금은 문제집이 아니라 읽기의 질을 점검할 때다. 에픽도 이 순서로 아이를 본다. 읽기 수준을 측정해 맞는 원서를 고르고, 읽은 것을 말과 글로 다시 꺼내는 과정을 교사가 곁에서 확인한다.
참고한 자료
- 뉴시스 (2025). ‘불수능’ 넘어 ‘황당 수능’…절대평가 영어 1등급 비율, 상대평가 과목보다 낮아. https://www.newsis.com/view/NISX20251204_0003428393
- 머니투데이 (2026). 6월 모평 또 ‘불영어’…1등급 4.13%, 국어와 수학보다 적었다. https://www.mt.co.kr/policy/2026/06/30/2026063011132019539
- 뉴스핌 (2026). 교사 출제위원 늘려도 ‘불’영어…수능 영어 절대평가 9년째 난이도 ‘널뛰기’. https://www.newspim.com/news/view/20260706000821
- 문화일보 (2025). 논란의 수능영어 24번 지문… 원저자 “출제 말았어야”. https://www.munhwa.com/article/11552558
- 한국일보 (2025). BBC, 한국 수능 영어 난이도와 불수능 논란 집중 조명.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21220410005147
- 시사저널 (2023). 수능 영어 31번부터 40번 지문 대부분 미국 석사와 박사 전공서적 인용.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66387
- 엄혜랑 (2022). 절대평가제 도입 이후 수능 영어 독해지문의 난이도 분석: 어휘 복잡성과 통사적 복잡성을 중심으로. 학습자중심교과교육연구, 22(6), 397-416.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822578
- Mol, S. E., & Bus, A. G. (2011). To Read or Not to Read: A Meta-Analysis of Print Exposure From Infancy to Early Adulthood. Psychological Bulletin, 137(2), 267-296.
- Kintsch, W. (1998). Comprehension: A Paradigm for Cogni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