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육 가이드 | 8분 읽기

TOEFL Junior 같은 공인시험, 초등 고학년에 꼭 필요할까

에픽어학원 , 읽기의 과학, 원서 중심, 데이터 기반 영어 교육

초등 고학년 학부모가 TOEFL Junior 같은 공인시험 앞에서 하는 고민에 답한다. ETS가 만 11세 이상을 위해 설계한 시험이라는 사실과 성적표에 CEFR과 Lexile이 함께 표기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시험을 목표가 아니라 좌표로 두는 태도를 정리하고, 기관 밖 지표가 필요한 전환 시점인지, 아이가 긴 글을 자력으로 읽는 단계인지, 이미 읽기 진단 데이터가 있는지를 기준으로 올해 봐도 좋은 경우와 미뤄도 되는 경우를 나누어 제시한다.


다른 집 성적표 이야기를 들은 날

초등 5학년, 6학년 아이를 둔 부모에게는 이런 저녁이 있다. 같은 학년 아이가 공인시험을 봤다는 이야기를 듣고 온 날, 검색창에 토플주니어를 쳐 보고는 접수 안내 앞에서 멈춘다. 마음은 두 갈래다. 아이의 영어가 지금 어디쯤인지 객관적인 숫자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시험을 준비시키다가 아이가 영어 자체를 싫어하게 될까 하는 걱정이다.

이 두 마음은 반대처럼 보이지만 같은 질문으로 모인다. 시험을 무엇에 쓸 것인가. 이 글은 TOEFL Junior 같은 시험이 어떤 자리에 놓일 때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먼저 정리하고, 올해 봐도 좋은 경우와 미뤄도 되는 경우를 나누어 답한다.

공인시험이라고 다 같은 시험이 아니다

먼저 짚을 것이 있다. 부모가 “공인시험”이라고 부르는 것 안에는 서로 다른 대상을 위해 만들어진 시험이 섞여 있다.

TOEFL Junior는 ETS가 만 11세 이상 청소년을 위해 설계한 시험이다. 듣기, 언어 형식과 의미, 독해의 세 영역으로 이루어지고 총점은 600점에서 900점 사이로 나온다. 문항의 소재와 지문의 길이, 어휘 수준이 이 나이대 아이가 실제로 만나는 학교 언어에 맞춰져 있다. ETS는 이보다 어린 학습자를 위해서는 TOEFL Primary라는 별도의 시험을 둔다. 시험을 만드는 기관 스스로 연령에 따라 눈금을 나눈다는 사실이, 연령이 판단의 첫 기준이라는 점을 잘 보여 준다.

반면 이름이 널리 알려진 여러 시험은 성인, 특히 대학 진학이나 유학을 앞둔 사람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지문의 주제도 어휘의 밀도도 성인 학습자를 상정한다.

성인용 척도를 초등에 앞당기면 생기는 일

여기서 판단의 첫 갈림길이 나온다. 성인용 시험을 초등 고학년에 미리 적용하면, 아이의 현재 실력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먼 목표에 아이를 세워 두게 된다. 점수는 낮게 나올 수밖에 없고, 그 낮은 점수가 아이의 진짜 수준을 말해 주지도 않는다. 아이는 자기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것과 무관한 잣대 앞에서 좌절만 배운다.

연령에 맞게 설계된 지표는 이 문제를 피한다. 아이가 지금 서 있는 자리를 그 자리에 맞는 눈금으로 재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등 고학년의 첫 질문은 “이름값이 높은 시험인가”가 아니라 “이 나이에 맞게 설계된 시험인가”가 된다.

시험은 목표가 아니라 좌표다

두 번째 갈림길은 시험을 대하는 태도다. 시험은 아이가 도달할 목표가 아니라, 아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는 좌표다.

이것은 마음가짐의 문제만이 아니라 측정의 원칙이기도 하다. 미국의 교육학, 심리학, 교육측정 학회 세 곳이 함께 펴낸 교육 및 심리 검사 기준(Standards for Educational and Psychological Testing)은 시험의 타당성을 시험 자체의 성질이 아니라 점수를 어떤 용도로 해석하고 쓰는가에 붙는 성질로 본다. 같은 시험이 쓰임에 따라 정당한 도구가 되기도 하고 부당한 잣대가 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목표로 두면 시험이 공부의 끝이 된다. 점수를 올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고, 아이의 하루는 시험에 나올 유형을 미리 푸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이렇게 준비한 점수는 시험장을 나오는 순간 쓸모가 얇아진다. 좌표로 두면 반대다. 아이가 지금 어디쯤 왔고 다음 걸음이 어느 쪽인지 읽고, 점수 한 줄이 아니라 그 점수가 가리키는 다음 학습을 남긴다.

몇 점을 받았나가 아니라 무엇을 확인했나

같은 성적표를 놓고도 부모가 던지는 질문에 따라 시험의 가치가 갈린다. “몇 점이야”에서 멈추면 시험은 등수 확인으로 끝난다. “어느 영역이 왜 약하지”까지 물으면 시험은 다음 학습의 재료가 된다.

예를 들어 듣기는 잘 따라가는데 독해에서 점수가 떨어지는 아이가 있다. 귀로 들으면 이해하지만 긴 글을 스스로 읽어 뜻을 잡는 힘이 아직 덜 자란 상태일 수 있다. 반대로 글은 곧잘 읽는데 들을 때 놓치는 아이도 있다. 이 차이를 읽어 내면 부모와 교사는 아이마다 다른 다음 단계를 준비할 수 있다. 시험은 이때 낙인이 아니라 관찰의 도구가 된다.

성적표의 CEFR과 Lexile을 읽는 법

TOEFL Junior가 초등 고학년 학부모에게 특히 쓸모 있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성적표에 총점만 나오지 않는다. ETS는 이 시험 성적표에 CEFR 레벨과 Lexile 지수를 함께 표기한다.

CEFR(유럽 언어 공통 기준, Common European Framework of Reference)은 유럽평의회가 만든 국제 기준으로, 언어 숙달 정도를 A1에서 C2까지 여섯 단계로 나눈다. Lexile은 텍스트의 난이도와 독자의 읽기 수준을 같은 척도 위에 놓는 지수다. 어떤 책이 아이에게 알맞은지 고를 때 쓰는 실무 도구다.

시험 결과가 다음에 읽힐 책을 바꾼다

여기서 시험과 독서가 한 줄로 이어진다. 아이의 읽기 수준을 Lexile 같은 지수로 알면 그 수준에 맞는 책을 데이터로 고를 수 있다. 지수가 가리키는 자리보다 한참 아래의 책은 새로 자라는 힘이 적고, 한참 위의 책은 아이의 마음이 먼저 닫힌다. 지수는 그 사이, 아이가 지금 읽어 내는 수준의 반걸음 앞을 찾는 데 쓰인다.

이 연결이 실제로 일어나는지는 부모가 기관을 판별하는 기준이 된다. Lexile 같은 지수를 진단과 독서 관리에 정말로 쓰는 곳이라면, 아이가 성적표를 받아 온 다음에 읽는 책이 달라진다. 성적표가 칭찬이나 걱정의 재료로만 쓰이고 책 목록이 그대로라면 그곳에서 지수는 장식에 가깝다. “이 성적표의 Lexile이 아이의 다음 책 선정에 어떻게 반영되나요”라고 물었을 때 돌아오는 답의 구체성이, 그 기관이 데이터를 쓰는 방식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읽기 지수는 읽기까지만 말한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성적표의 읽기 지수는 읽기를 재는 눈금이지 아이의 영어 전체를 재는 눈금이 아니다. 언어학자 짐 커민스(Jim Cummins)가 정리했듯, 일상 대화에 쓰는 말과 글을 읽고 학업에 쓰는 언어는 서로 다른 속도로 자란다. 대화가 유창한 아이의 읽기 지수가 기대보다 낮게 나오기도 하고, 그 반대도 흔하다. 점수 한 줄로 아이의 영어 전체를 판단하기보다, 어느 힘이 앞서 있고 어느 힘이 자랄 차례인지 나누어 읽는 편이 정확하다.

올해 봐도 좋은 경우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올해 봐야 할까. 다음 세 가지 경우라면 응시가 아이에게 남기는 것이 있다.

기관 밖의 눈금이 필요한 전환 시점이 그 하나다.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거나 다니던 곳을 옮기는 중이어서, 특정 기관의 레벨이 아니라 어디서나 통하는 지표로 아이의 위치를 확인할 일이 있는 경우다. 한 기관 안의 레벨은 그 기관의 눈금이므로, 환경이 바뀌는 시점에는 바깥 눈금이 유용하다.

아이가 긴 글을 자력으로 읽는 단계에 들어섰을 때도 봐 둘 만하다. 그림의 도움 없이 챕터북 수준의 글을 혼자 읽고 줄거리를 제 말로 옮길 수 있는가가 관찰 가능한 신호다. 시험 지문을 읽어 낼 기초가 있어야 점수가 실력을 비추고, 성적표의 영역별 차이도 읽을 만한 정보가 된다.

마지막은 아이의 읽기 수준을 알려 주는 데이터가 지금 없는 경우다. 다니는 곳에 독서 진단이나 지수 관리가 없고 부모도 아이가 어느 수준의 책을 읽을 수 있는지 가늠이 서지 않는다면, 성적표의 CEFR과 Lexile이 첫 좌표가 되어 준다.

지금은 미뤄도 되는 경우

반대의 신호도 그만큼 분명하다.

이미 좌표가 있다면 시험이 새로 알려 줄 것이 적다. 다니는 곳에서 Lexile 같은 지수로 읽기 수준을 정기적으로 재고 있고 그 결과가 책 선정으로 이어지고 있다면, 같은 정보를 응시료와 하루의 긴장을 들여 다시 사는 셈이다.

시험 준비가 독서 시간을 잠식하기 시작했다면 그 자체가 미룰 신호다. 유형 문제 풀이가 책 읽는 시간을 대체하는 순간, 좌표를 얻으려다 그 좌표가 재려던 실력 자체를 깎는다. 초등 고학년에게 점수를 위한 유형 훈련은, 앞서 본 성인용 시험의 문제를 규모만 줄여 반복하는 일이다.

아이가 아직 긴 글을 자력으로 읽는 단계가 아니라면 점수는 정보가 되지 못한다. 읽기의 기초가 갖춰지기 전의 낮은 점수는 아이에 대해 새로 말해 주는 것이 없고, 아이에게는 이른 실패의 기억으로 남는다. 시험이라는 상황 자체에 긴장이 큰 아이라면 더욱 그렇다.

판정은 단순하다. 봐도 좋은 세 가지 경우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으면 올해는 볼 이유가 없다. 시험이 주는 것은 좌표가 전부인데, 좌표가 이미 있거나 좌표를 읽어 낼 단계가 아니라면 남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미루는 것은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순서를 지키는 것이다. 시험은 내년에도 그 자리에 있다.

성적표는 서랍이 아니라 책장으로

응시를 정했다면 남는 일은 결과를 쓰는 일이다. 성적표가 오면 총점에서 멈추지 않고 세 가지를 읽는다. CEFR로 아이의 현재 단계를 확인하고, Lexile로 다음에 읽을 책의 수준을 잡고, 영역 간 차이로 어느 힘이 자랄 차례인지 본다. 그 결과가 다음 달 아이의 책장에 반영되면 시험은 제 몫을 다한 것이다.

이렇게 쓰일 때 공인시험은 아이를 몰아붙이는 관문이 아니라, 부모와 교사가 아이의 다음 걸음을 함께 읽는 도구가 된다. 그리고 이렇게 쓸 수 없는 상황이라면 올해는 보지 않아도 된다. 그 사이 아이가 읽은 책은 어디로도 사라지지 않는다.

참고한 자료

  • ETS. TOEFL Junior Tests: Scores and Score Reports. https://www.ets.org/toefl/junior/scoring-reporting.html
  • ETS. TOEFL Primary Tests.
  • Council of Europe. (2001). Common European Framework of Reference for Languages: Learning, Teaching, Assessment.
  • American Educational Research Association,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 National Council on Measurement in Education. (2014). Standards for Educational and Psychological Testing.
  • Cummins, J. (2008). BICS and CALP: Empirical and Theoretical Status of the Distinction. In Encyclopedia of Language and Education (2nd 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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